채널 씨모어의 TJ가 헬스케어 연재를 시작하며 제약·바이오 밸류체인 한 편을 냈다. 종목을 고르기 전에 산업을 먼저 갈라 놓자는 회차다. 이 글은 그 설명에서 투자자가 쓸 수 있는 구분선이 어디에 그어졌는지를 읽는다.
다섯 칸과 그 칸을 덮는 회사
진행자가 헬스케어를 피해 온 이유는 규모가 아니라 뭉침이었다. 산업이 여럿 섞여 있고 회사가 너무 많아 하나씩 뜯어 보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첫 칼질이 넷이다. 약을 만드는 제약·바이오, 의료 장비, 병원·보험 같은 의료 서비스, 의료 데이터를 디지털로 다루는 쪽. 그리고 이 넷은 진단·치료·유통·보험을 통해 서로 물려 있어서, 한 갈래만 떼어 회사 하나를 분석해도 잘 안 읽힌다고 못박는다.
두 번째 칼질이 이 회차의 뼈대다. 신약은 R&D, 임상시험, 허가, 생산, 판매 다섯 단계를 지나 환자에게 닿는다. 다섯이라는 수 자체는 새롭지 않다. 새로운 것은 이 다섯을 회사가 서 있는 자리로 읽는 순간이다. 한 칸에 선 회사는 그 칸의 값만 받는다. 후보 물질을 찾는 회사는 물질을 팔거나 임상까지 끌고 가야 돈을 벌고, 임상을 대신 해 주는 회사는 대행 수수료를 받고, 생산을 맡는 회사는 만든 양만큼 번다.
그래서 「제약·바이오에 투자한다」는 문장은 아무것도 안 정한 문장이 된다. 다섯 칸은 파는 물건도 다르고 흔들리는 이유도 다르다. 진행자가 종목을 미루고 산업을 먼저 깐 이유가 여기 있다.
이 회차가 네 갈래 가운데 제약·바이오를 먼저 편 것도 우연이 아니다. 의료 장비와 의료 서비스는 각각 제조업과 보험업의 셈법으로 읽을 수 있지만, 약은 만들어 놓고 파는 물건이 아니라 관문을 하나씩 통과해야 팔 수 있는 물건이다. 관문마다 선 회사가 다르고 그 회사들이 버는 방식도 다르다. 다른 제조업과 이 산업이 다른 점이 여기다.
R&D 칸은 다시 둘로 갈린다. ① 후보 물질을 찾는 일과 ② 그 물질을 약으로 만들 수 있게 최적화하는 일이다. 앞이 통상 4~5년이고, AI가 들어오면서 1년으로 줄고 있다고 진행자는 전한다. 최적화 쪽에도 시뮬레이션이 들어가 있고, R&D 회사가 구글 알파폴드 같은 곳에 후보 물질을 주고 계산을 받아 오는 방식이 이미 돈다.
여기서 값이 어디로 가는지를 갈라 봐야 한다. 빨라진 것은 다섯 칸 가운데 첫 칸뿐이다. 임상은 사람에게 약을 넣어 보는 일이라 시간이 안 줄고, 허가는 FDA가 박사 논문급 자료를 요구하는 일이라 안 줄고, 생산은 공장을 지어야 하는 일이라 안 줄고, 유통은 도매상과 PBM(약가·처방 목록을 관리하는 미국의 약제급여관리업체)이 문을 여닫는 일이라 안 줄어든다.
한 칸만 빨라지고 나머지가 그대로면 앞 칸의 산출물이 다음 칸 앞에 쌓인다. 진행자가 「후보 물질이 앞으로 굉장히 많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 대목이 투자자에게는 뒤 칸의 대기줄이 길어진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 회차가 결론까지 밀고 가지는 않지만, CDMO 쪽 물량이 몰릴 것이라는 뒤의 판단은 바로 이 셈에서 나온다.
단계마다 묻는 것이 다르다
임상 단계는 뉴스에서 가장 많이 보는 낱말인데, 진행자가 오해 하나를 정면으로 걷어 낸다. 1상 100명, 2상 1천명, 3상 1만명처럼 규모로 나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게 아니라 단계마다 보는 관점이 다르다는 것이다.
무엇을 묻는지는 이렇다. ① 1상은 이 약이 안전한가, ② 2상은 효과가 있는가, ③ 3상은 기존 치료제보다 우수한가. 세 물음은 난이도 순서가 아니라 성격이 다른 관문이다. 안전은 통과·탈락이 비교적 또렷하고, 효과는 통계로 다투고, 우수성은 이미 팔리고 있는 약과 겨루는 일이다.
이 구분이 투자에 바로 붙는다. 「2상 통과」라는 한 줄짜리 기사를 보고 따라 사는 일이 왜 위험한지가 여기서 설명된다. 2상 통과는 효과가 있다는 말이지 기존 약보다 낫다는 말이 아니다. 값을 정하는 관문은 3상이고, 3상에서 겨루는 상대는 그 약이 들어가려는 시장에 이미 서 있다.
임상 뒤에 관문이 하나 더 있다는 것도 이 회차가 짚는 대목이다. 규제 당국의 허가는 요식 절차가 아니라 별도의 벽이다. FDA가 요구하는 자료가 박사 논문급이라 아무나 할 수 없고, 그래서 임상을 대행한 CRO가 임상과 허가를 함께 끌고 가는 경우가 많다. 근거 자료를 요구받았을 때 그 임상을 실제로 돌린 쪽이 자료에 접근하기도 쉽고 설명하기도 낫기 때문이다. 임상과 허가가 한 회사 안에서 이어진다는 것은 CRO가 받는 값이 단순 대행 수수료에 그치지 않고 자료를 쥐고 있는 자리에서도 나온다는 뜻이다.
한 칸씩 누가 서 있고 무엇으로 버는지를 진행자가 차례로 짚는다. 볼 것과 무너지는 자리가 넷 다 다르다. 바이오텍은 파이프라인을 보고 임상 실패로 무너지고, CRO는 임상 이력과 병원 네트워크로 버티다 신규 진입에 밀리고, CDMO는 생산능력과 효율로 겨루다 수주 공백에 흔들리고, 빅파마는 특허 잔여기간과 후속 약을 보다 특허 절벽에 밀린다.
바이오텍은 팔고 있는 약이 없어 늘 현금이 모자라고, 그래서 후보 물질의 진행 상황인 파이프라인이 전부다. 직접 생산은 돈과 시간이 많이 들어 대부분 라이선스를 판다.
CRO는 수수료를 받는 단순한 구조인데 들어가기가 어렵다. 환자를 어떻게 고르는지가 중요하고, 글로벌 병원 네트워크가 있어야 환자를 모을 수 있다. 임상을 해 본 이력과 네트워크가 없으면 시작 자체가 불가능해서 몇 개 회사가 세계 시장을 거의 반독점한다.
CDMO는 생산 기술보다 생산 CAPA가 핵심이다. 얼마나 싸게 많이 만드느냐가 값을 정한다. 바이오의약품은 화학의약품과 달리 만들기 어려워 몇 개 업체가 과점하고 있고,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생산 CAPA 기준 세계 1위다. 1위 회사는 론자이고 일본 후지, 중국 우시, 미국 써모피셔 사이언티픽이 뒤에 있다.
빅파마는 블록버스터, 곧 연매출 10억 달러 이상을 기록한 약이 이어져 나와야 성장세가 유지된다. 그리고 그 약은 특허가 풀리는 순간 복제약이 붙어 버는 돈이 빠진다. 그래서 빅파마는 직접 개발만 하지 않고 바이오텍의 초기 후보 물질이나 임상 1·2상 진행 중인 약을 라이선스 인 하거나 회사째 인수한다.
진행자가 빅파마를 볼 때 확인하라고 든 것은 넷이다. ① 블록버스터가 무엇인지, ② 특허가 얼마나 남았는지, ③ 특허가 끝난 뒤 후속으로 따라오는 약이 있는지, ④ 바이오텍 인수 상황이 어떤지. 앞의 둘은 지금 버는 돈의 크기와 남은 시간이고, 뒤의 둘은 그 시간이 끝났을 때 대신 설 것이 준비돼 있는지다. 빅파마의 값은 지금 파는 약에서 오지만 그 값이 유지될지는 사 오는 파이프라인에서 갈린다.
이 회차에서 진행자가 자기 판단을 세 번 낸다. 세 번 모두 기준이 같다.
① R&D는 말린다. 임상에 성공하면 초대박이고 실패하면 부도라, 개인적으로 투자를 말리고 자신은 아예 보지 않는다고 말한다. 국내 바이오텍의 허위 공시 문제도 함께 짚는다. 임상 진행 중에 잘되고 있다는 소문을 흘려 주가를 띄우는 일이 많아 금융 당국이 숫자로 증명하라고 요구하는데, 기대감으로 기업 가치가 달라지는 것을 숫자로 증명하라는 요구는 바이오텍에 또 하나의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② CRO는 주목한다. ③ CDMO도 유망하다고 본다.
기준은 결과의 분산이다. 바이오텍은 한 번의 임상 결과가 회사의 값을 통째로 뒤집는다. CRO와 CDMO는 어느 약이 성공하든 일을 받는다. 약이 성공할지를 맞히는 문제와, 시도가 늘어날지를 맞히는 문제는 난이도가 다르다. 2절에서 본 것처럼 AI가 후보 물질을 늘리면 시도 자체는 늘어난다. 그러면 개별 성공률을 몰라도 대행과 생산의 일감은 는다.
여기에 진입장벽이 겹친다. CRO는 이력과 네트워크가 없으면 못 들어오고, CDMO는 바이오의약품 생산이 어려워 몇 곳이 과점한다. 물량이 늘 때 새 공급자가 쉽게 붙지 못하는 자리라야 늘어난 물량이 값으로 남는다.
같은 「복제」인데 싸움이 다르다
신약, 제네릭, 바이오시밀러 셋이 헷갈리는 이유를 진행자는 돈 버는 방식이 아예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신약은 최초로 개발된 약이라 특허로 일정 기간 보장되고, 블록버스터가 나올 가능성이 가장 높은 자리다. 제네릭과 바이오시밀러는 둘 다 복제약인데 여기서 갈린다. 제네릭은 화학 성분을 뭉쳐 만든 고형제의 복제라 만들기 쉽고, 그래서 단가 싸움이 치열하며 인도와 중국 업체가 잡고 있다. 국내 고지혈증약 복제약이 180개가 넘는다는 수가 그 경쟁의 밀도를 보여 준다.
바이오시밀러는 다르다. 단백질과 세포를 기반으로 만들기 때문에 100% 똑같이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고, 그래서 복제라는 이름을 달고도 높은 기술력을 요구한다. 세계적으로 하는 업체가 많지 않고 국내에는 삼성바이오에피스와 셀트리온 두 곳이 있다.
같은 「복제」인데 한쪽은 원가 경쟁이고 다른 한쪽은 기술 과점이다. 종목을 볼 때 이 둘을 한 낱말로 묶으면 이익률의 방향을 반대로 읽게 된다.
빠진 것이 셋이다. ① 숫자가 거의 없다. 시장 규모, CRO·CDMO의 점유율, 임상 단계별 성공률이 나오지 않는다. 이 회차는 지도이지 값이 아니다. ② AI로 후보 물질이 얼마나 늘었는지 실제 수가 없다. 4~5년이 1년으로 줄었다는 것도 진행자가 전해 들은 말로 제시된다. ③ 미국 유통의 PBM과 도매상이 관문이라는 말은 나왔지만 그 관문이 약값을 어떻게 정하는지는 다음으로 미뤄져 있다.
무엇이 나오면 이 판단이 흔들리는지도 셋이다. ① CRO 과점이 유지되는지. 임상 물량이 늘면 새 진입자가 붙을 유인도 같이 커진다. 이력과 네트워크가 진짜 장벽이라면 물량이 늘어도 몇 곳으로 몰릴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수수료율이 먼저 깎인다. ② 늘어난 후보 물질이 실제로 임상까지 오는지. AI가 만든 후보군이 전임상에서 대거 걸러지면 뒤 칸의 대기줄은 안 길어진다. ③ 생산이 한 덩어리로 남는지. 대량 생산과 소량 맞춤 생산이 갈리면 CDMO 안에서도 자리마다 답이 달라진다.
세 번째는 다음 회차에서 진행자 자신이 뒤집는다. 모더나 암백신이 나온 뒤 생산을 대량과 맞춤형 소량으로 나눠 봐야겠다고 생각을 바꿨다고 밝힌다.